상처에 대하여 by Jay


내가 스물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부모님은 많이 아프셨다.
그리고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지셨다.
두 분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었고 나는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나이차가 꽤 있는 동생은 고등학생이었다.
밤 열시가 되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고등학생.

나에게 꽤 어린 동생이 있었던 것처럼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꽤나 어린 동생이였다.
어린 동생을 가지고 있는 누구나가 그렇듯이 동생은 아무리 커도 작은 아이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내 아버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걱정하는 친척들로부터 하루에도 수 통의 전화를 받아야했다.
또한 하루에 몇 번의 방문이 있었다.


부모님이 안 계신 집에서 대학을 휴학한 나의 일과는 항상 같았다.
동생 아침밥을 챙겨주고 친척들의 전화를 받았다.
동생은 무엇을 먹었는지 학교는 잘 보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한참이고 통화를 하면 기운이 없었다.
하루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남은 하루를 빨리 정리하고 싶었다.
그 때의 하루들은 유독 길었다.

동생이 가고 나면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하필 겨울을 지나고 있을 무렵 나는 세탁기를 쓰기 아까워 동생의 옷가지 하나하나를 손빨래 해야 했다.
때마침 세제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매일같이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오는 동생 덕분에 빨랫감은 항상 가득했다.
겨울옷이니 더 그래보였을지도 모른다.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는 베란다에서 차라리 나는 문을 활짝 열었다.
손이 시린것보다 가슴께 어딘가가 더 시렸다.
늘상 내가 하던 빨래들인데 동생 옷 좀 더 했다고 나는 괜시리 내가 더 작게 느껴졌다.
빨랫더미가 더 커 보였다.
빨래를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갔다.
시간의 블랙홀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그래도 할 일이 남았다.
온 집안을 걸레질을 하고 나면 오후가 되었다.
점심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데도 하루 한 끼면 충분했다.
그리고 나한테도 나를 위한 시간이 생긴다.
공부를 했다.
하루라도 빨래와 청소를 거를순 없었다.
가까이 사는 친척분이 매일같이 방문하셔서 검사 아닌 검사를 받아야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간만 되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내가 하룻동안 한 일들을 나는 처음부터 다시 했다.
내가 묵묵히 비난과 비꼼들 모든 정서적 학대를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아니 견뎌야만 했던 이유는
나는 갈 곳이 없는 학생이었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정도 정서적 학대쯤이야 나에게는 어릴때부터 계속된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래서 더욱 나는 적응했고 벗어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집이 내 무덤 같았다.
내가 오롯이 혼자가 되는 시간은 늦은 저녁뿐이었다.
겨우 첫끼이자 늦은 저녁을 챙겨먹고 나면 동생이 집으로 왔다.
아침잠이 많아 동생이 먹을 아침밥을 미리 해야했다.


어느 주말 동생은 본인 옷들을 직접 빨고 널어놓았다.
나는 거실 바닥에 앉아 동생이 널어놓은 옷가지들을 하염없이 봤다.
고맙다고 해야하는 걸까.
매일같이 내가 하는 일을 누군가는 선심쓰듯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웃겼다.
나는 후에 동생이 자신의 빨래를 하도록 놔둔것을 후회했다.
다음 날 동생이 나에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니꺼는 니가 할 거면 해 라는 나의 말에
동생은 어제 자신이 빨래를 했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내가 미친건지 동생이 미친건지에 대해 머릿속에서 열띤 토론을 펼치느라 대꾸할 정신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울었다.
내가 나인것에 대해 분노했다.
내가 나로 태어났음에 내가 여자로 태어났음에 분노했다.
내가 우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는 날이 많아질수록 참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나는 가족들에게 복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나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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